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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0-17 20:43:24
조회수 74
첨부파일 20201018 속회공과 홍보페이지.pdf

2020.10.18. 속회공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찬 송 449(예수 따라가며)

합심기도 인도자 또는 정해진 자

성경본문 호세아 41-19

말씀묵상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본문 4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6절의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는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알다의 원어는 다아트인데 아담과 하와의 동침을 의미하는 단어 야다가 그 단어의 뿌리가 됩니다. 즉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경험적인 앎이며 동시에 인격과 인격의 교류를 하는 관계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더 나아가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대됩니다. 이러한 의미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3장으로 고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4장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더 깊은 말씀이 선포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세아 4: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실과 인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진실과 인애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고 그 다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없는 것입니다. 진실이란 에메트로서 진리를 의미하고 인애는 헤세드로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와 진리의 하나님, 용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하나님과의 관계조차 없는 백성의 민낯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찬 송 449(예수 따라가며)

합심기도 인도자 또는 정해진 자

성경본문 호세아 41-19

말씀묵상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본문 4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6절의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는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의 알다의 원어는 다아트인데 아담과 하와의 동침을 의미하는 단어 야다가 그 단어의 뿌리가 됩니다. 즉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경험적인 앎이며 동시에 인격과 인격의 교류를 하는 관계적인 앎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더 나아가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대됩니다. 이러한 의미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서 3장으로 고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4장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더 깊은 말씀이 선포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세아 4: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실과 인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진실과 인애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고 그 다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없는 것입니다. 진실이란 에메트로서 진리를 의미하고 인애는 헤세드로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와 진리의 하나님, 용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하나님과의 관계조차 없는 백성의 민낯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신자가 망하는 것이 하나님에 관하여 모르는 것과 하나님에 관하여 알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문제를 신자가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1)” 2절의 말씀은 계명을 어기며 살아가는 백성의 모습입니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2)” 인간이 계명을 어기고 살아가는 모습의 결론이 바로 3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3)”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의 모습이 신자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그 원인으로부터 백성과 지도자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4-5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4-5)” 백성과 지도자가 서로 다투지만 모두 넘어지는 때가 다를지라도 넘어지는 모습이 같으니 결국 스스로 욕됨을 7-8절이 말씀합니다.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7-8)” 지도자는 백성의 신앙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먹을 음식이 중요하고, 백성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모른 체로 나에게 필요한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전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백성들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7)” 하나님은 백성을 향해 우상과 연합한 자를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지식을 얻었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다아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는 신자는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인애를 통해 자신의 죄성과 부딪혀 결국 자기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했던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고 있는 백성이 자기죽음을 실현하는 이유는 진리와 사랑의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선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그것이 인류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지향해야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살아갈 것을 신자가 결심할 때, 자기만족이 아닌 자기비움을 지향하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에게 은혜를 허락하시고 신자의 마음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으로 가득차기에 평안가운데 거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 결국 신자에게 자기비움과 자기부인이 자기만족이 되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비천함 가운데 자족함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기비움을 지향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질문

고난 중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승리를 체험한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주시고 서로를 위하여 중보해 주세요.

 

합심기도 및 주님 가르치신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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